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3) - 거인의 어깨 위에 서다
Posted 2008/01/15 10:19 by 강경수, Filed under: 분류없음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2) - 행복한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고 겪으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드뭅니다. 예를 들어 한때 IT 개발자들이 연합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지는 못한 듯 했고, 개발자 커뮤니티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소수의 몇몇이 애를 쓰고 있지만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개발자나 IT 업계의 약자를 위한 시민단체와 같은 이익단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자들 스스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사판에 속한 막노동자로 자신을 비약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이전에 어느 개발자 블로그에 올라온 카툰을 본적이 있습니다. 새벽 노동시장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고용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드럼통에 불을 째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바 2명!”이라고 외치는 모습입니다. 이 한 컷의 카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조리한 현실보다 이러한 현실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버려는 두는,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상황. 그것이 현실보다 더한 개발자의 슬픔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한편에서는 실력 없이 대우만 잘 받으려는 개발자와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가 없는 개발자도 의외로 많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역량을 키우는 일임에도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개발자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단지 돈 때문에 일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갖고 있고, 그 역량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삶의 기쁨은 그 역량이 커지는 느낌이고 슬픔은 그 역량이 작아지는 느낌이다"라며, "창조란 무엇보다도 '기쁜 삶의 창조'이다. 그리고 창조는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개발자로서의 기쁜 삶을 위해 어떤 식이로든 자기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속박하는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단순하게 코딩만을 하는 테크니컬 노동자가 아닌 자유롭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창조자로서 개발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들뢰즈가 말한 기쁨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기쁜 삶'을 영위해 나가고 또한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또 다른 기쁜 삶을 창조할 때가 바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한 유명한 개발자 한 분은 몇 날 며칠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어느 순간 해결했을 때 가슴 속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주체할 수 희열 때문에 동네를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유레카'를 외치면서 로마 시내를 벌거벗고 뛰었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지요.
물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Java를 만든 제임스 고슬링은 어느 강연에서 한 참석자가 "Java를 배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는 당신이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Java를 개발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매일 같이 느끼는 새롭고 놀랄만한 기술들은 사실 기존에 정립한 개념과 기술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편리한 환경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행운아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튼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혜택 받은 자임을 생각해야 하고, 그 어깨가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창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그렇다고 쉽다거나 만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거인의 어깨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개발자로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여는 열쇠는 찾는 자의 몫이다. 미래의 키 메이커는 바로 나이자 동시에 우리입니다.
* 글을 다 쓴 후 포스팅하기 직전 서두에 언급한 ‘노예’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결코 현재의 개발자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 아닙니다. 단지 이번 글을 쓰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떠올라 그 개념을 좀 차용해 보았던 것입니다.
Trackback URL : http://bloter.net/tt/elegy/trackback/6
-
공감합니다.
꾸준한 자기개발과 자기만족이 개발자의 기본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하다보면 따라올 거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