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우락부락한 문지기가 입구를 가로막는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거죠?" "들어가고 싶다면 한 번 들어가보게. 하지만 나는 힘이 세다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힘 센 문지기들이 여럿이지." 시골남자는 들여보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죽음에 임박한 시골남자가 마지막 힘을 짜내 묻는다. "왜 날 빼고는 아무도 들여보내달라고 하지 않나요?" 문지기가 말한다. "여긴 자네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 이 입구는 자네만을 위해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지."
살다보면 자신을 오해하고 착각할 때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 단편 <법 앞에서>의 시골남자가 그렇다. 그에겐 문 너머 어딘가에 있을 법 따위는 이제 관심이 없다. 오로지 눈 앞의 문지기를 뚫고 지나갈 일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문지기는 정말로 힘이 센 것일까. 시골남자가 정말로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혹시 문지기는 시골남자의 허위의식의 창조물은 아닐런지….
비슷한 경우를 현실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이번에도 '법' 얘기다.
정부 조직 아래엔 수많은 '공공기관'이 있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이고, KBS는 '공영방송'이다. 모두 국가가 관여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들은 사사롭지 않은 공(公)적 영역이자 더불어 나누는(共) 자산이다.
이 당연한 원칙이 우리 사회에선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아니올시다.
우리나라 정부기관이나 대학, 공영 방송국의 지적재산은 일반인에게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제공된다. 이를테면 KBS가 만든 영상 컨텐트는 10초짜리 짧은 영상물도 마음대로 퍼갈 수 없다. 돈벌이와 무관하다싶은 방송물이라도 행여 위법의 덫에 걸리지 않을까 주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용 허락을 받고 싶어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 지 막막하다. '공정이용'이란 완충장치기 있긴 하나, 저작물보호장치(DRM)라도 걸어두면 그나마도 무용지물이다.
정부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각 부처별로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 자료들을 공개하기는 하지만, 훨씬 많은 자료들은 캐비닛 어딘가에 쌓여 있다. 이들 상당수는 국민 세금을 들여 시장조사와 연구를 거친 알짜 지식들이지만, 대개 보고서에 한두 줄 인용되고 폐기된다. 원문 자료만이라도 공개해 여럿이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돼 돌아올 뿐이다.
국내 대학은 어떤가. 도서관을 가보라. 먼지 쌓인 채 서고에서 잠자는 논문들이 지천이다. 내용이 부실해서 그럴까. 아니다.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목과 목차 정도만 공개될 뿐, 내용을 보려면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힘들게 입구까지 찾아간다 해도 거쳐야 할 문들이 너무 많고 높다. 도중에 지쳐 주저앉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개는 첫 번째 문지기 앞에서 되돌아서고 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대개 이유는 하나로 수렴된다. '저작권 보호'다.
저작권은 보호돼야 마땅하다. 지식기반 사회에선 그게 합법적이다. 허나 합법적인 것이 꼭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보호 울타리를 유지하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나누는 방법은 있다. 문제는 합법의 울타리를 스스로 지나치게 견고하게 친 나머지, 합리성의 가치마저 매몰시키고 마는 데 있다.
나는 이것을 '허위의 문지기'라 부르고 싶다. 허위란 스스로를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행위다. 국내 공공기관들은 스스로의 가치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견고한 허위의 수문장 뒤에 숨어버렸다. 두텁게 쌓은 허위의 울타리에 갇혀 합리적인 공유와 재창조의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반대 사례를 보면 명확해진다. 미국 연방의회중계방송국(C-SPAN)은 미국 의회의 주요 행사나 기자회견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국이다. 이들은 지난 2007년 3월 자신들이 보유한 국회관련 동영상을 누구나 자유롭게 퍼가도록 풀었다. 출처를 밝히고 영리 목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정치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그렇다고 C-SPAN이 문을 닫거나 '무단 펌질'로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저작권 보호와 자유로운 이용 허락이라는 중용의 묘를 발휘한 덕분이다.
상아탑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는 2001년부터 '오픈코스웨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요 강의들의 교재는 물론, 음성 및 동영상 파일까지 온라인으로 무료로 제공된다. 모든 컨텐트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적용했다. 배움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지식 기부다. 강의를 무료로 공개했다고 해서 MIT 입학생이 줄었다거나 강의를 거부했다는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하버드대나 예일대도 비슷한 지식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예일대는 MIT 오픈코스웨어와 비슷한 '오픈 예일 코스' 프로젝트를 2007년 12월부터 시작했다. 역시 CCL 조건으로 웹에 주요 강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뼈대다. 하버드는 올해 2월 학생들의 투표를 거쳐 대학이 보유한 논문들을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인문 및 과학학부에만 우선 적용되긴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결정이다.
고인 지식은 썩게 마련이다. 학자들은 대학 서고에서 낮잠자는 자신의 논문을 보며 내 저작권이 잘 보호되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할까. 제대로 된 학자라면 늦기 전에 후학들에게 널리 전달되도록 팔을 걷어붙이는 게 옳다.
다른 부문에서도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미국 대법원과 항소심법원은 주요 판례들을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 2월 공개했다. 이들은 시스템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이를 가져다 자신만의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무료로 공개했다. 그게 공공을 위해 할 수 있는 자신들의 몫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는 그런 믿음이 있는가.
사회적 공기(公器)를 자임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애써 채운 사회적 그릇들을 널리 나눌 준비도, 그럴 마음도 없는 모양새다. 언론사닷컴 저작권 분야를 담당한 아무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사닷컴엔 CCL이 필요 없다." 이유가 재미있다. "모르는 이용자들이 무단으로 퍼가도 좋다고 오해할까봐"란다. "비즈니스에서 언론사닷컴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림짐작이고 무사안일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들은 미리 겁먹고 스스로 만든 허위의 수문장 뒤로 숨는 방식을 택했다. 여전히 펜을 권력삼아 비즈니스 상대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재화를 획득하는 방식만 고수하려 한다. 그것이 언론의 믿음직한 사업방식이라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강요할 바 아니다. 허나 묻고 싶다. 정말로 한 번 풀어보려 노력하기나 했나? 허위의 문지기만 살찌우는 게 아니고?
나누면 커진다. 널리(公) 나누는(共) 자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CCL은 정당한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몰수하는 집달리의 압류 딱지가 아니다. 자산은 지키면서 나눔도 실천하자는 긍정과 창조의 약속이다. 굳이 필요 없는 장벽은 걷어내고 소통하자는 구호요 실천이다.
나누면 또 새로워진다. 여럿의 손을 거치며 지식은 다듬어지고 보완된다. 위키피디아가 그러하다. 소수의 저명인사들의 머리를 빌리는 대신, 위키피디아는 전세계 누리꾼의 밀알같은 지식들을 모았다. 누군가가 올린 거짓 정보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곧바로 수정된다. 2005년 <네이처> 조사에 따르면 위키피디아는 230년 전통의 '브리태니커'보다 오류가 적었다.
CC는 조건 없이 나누고 베풀자는 '지식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이를테면 지식의 발원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조건을 달자는 것이다. 나눔의 폭과 깊이도 지식 컨텐트 소유자가 재량껏 정하면 된다.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면 애써 강요하지 않는다. 허나 굳이 안 나눌 이유가 없다면 나누길 권한다. 그게 CCL이다.
지식 자산을 나누면서도 합당한 대가를 얻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식이란 게 글자수, 논문 분량을 물리적으로 계량해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던가. 아니다. 많은 학자는 자신의 이름을 단 논문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원할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지식에, 깊은 통찰력과 노력에 감탄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머릿속 깊이 각인할 테다. 시장에서 학자의, 지식의 교환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공공기관은 지금이라도 돌아볼 일이다. 혹시 내가 쥐고 있는 지식이 허위의 울타리에 갇혀 빛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함께 만들고 다듬어 더 나은 지식 자산으로 거듭날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하여 세상을 보다 즐겁고 똑똑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는지.
시골남자를 막아선 문지기는 법의 수문장이 아니라 고집스런 허위의식의 산물이다. 많은 공공기관과 대학, 언론기관이 애써 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 저작권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식 컨텐트를 푸는 순간 문지기가 사라지고 수많은 시골남자들이 법 안으로 몰려들어 휘저을까봐 노심초사한다. 공공기관을 지배하는 허위의식의 문지기는 지금이라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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