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기자들이 체험한 IT 기기를 각자의 시각으로 솔직하게 해석해봅니다.
▲ 후지필름 인스탁스 미니에보.(사진=이일호 기자)
▲ 후지필름 인스탁스 미니에보.(사진=이일호 기자)

부모님 댁에 가면 가끔 작은 방 한구석 고이 모셔진 앨범을 펼치게 된다.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시절부터 연애, 결혼식, 나와 누나의 출생과 성장,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을 되돌아보게 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가족의 역사’다. 근데 그 역사는 기자가 20대쯤 돼서부터 단절됐다, 거의 정확히 디지털카메라를 쓰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그렇다. 카메라가 디지털화하면서 우리는 필름카메라를 거의 쓰지 않게 됐고, 자연스럽게 필름 사진을 두지 않게 됐다. ‘M(밀레니엄) 세대’ 이전에 태어났다면 우리 집, 친구 집을 떠올려보시라. 집에 크고 작은 액자가 수두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여느 집에서도 액자 사진이란 걸 찾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 필름사진은 거의 안 찍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 사진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던 마음도 줄었다. 한 번 찍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울 수 있는 게 사진이 됐다. 옛날처럼 찍으면 무조건 뽑는 게 아니다. 필름 카메라 속 사진 한 장의 값어치와 스마트폰 속 사진 한 장의 값어치는 천양지차다.

▲ 디지털 카메라 시대로 넘어오며 집에 이런 앨범을 두는 건 익숙지 못한 일이 됐다.(사진=픽사베이)
▲ 디지털 카메라 시대로 넘어오며 집에 이런 앨범을 두는 건 익숙지 못한 일이 됐다.(사진=픽사베이)

그럼에도 여전히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은 있다. 필름 사진을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고, 또 필카로 찍을 때 나는 ‘징~’하는 소리와 진동을 좋아할 수도 있다. 일종의 아날로그 감성인데, 신기하게 2000년대에 태어난 ‘Z세대’ 가운데 즉석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넷엔 동호회도 있고, SNS에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많고, 유튜브엔 필카 잘 찍는 법 관련 영상들도 꽤 된다.

이번 리뷰는 후지필름의 즉석카메라 ‘인스탁스’ 라인업 ‘미니에보’(MiniEvo, 이하 미니에보)다.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 안에서 바로 현상되는 걸 흔히들 폴라로이드라고 하는데 그건 다른 브랜드 이름이고 정식 명칭은 즉석카메라다. 후지필름은 아날로그 제품은 물론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하이브리드 제품도 만드는데, 미니에보는 하이브리드면서 하이앤드에 속한다.

디지털 카메라에 '감성 한 스푼'
첫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반갑다’. 미니에보의 외장은 플라스틱 강성의 프레임에 고급스러운 질감의 가죽이 씌워져 있다. 손에 닿는 가죽의 느낌이 흡사 옛날 고급 카메라의 느낌이다. 옛날 카메라는 은색 외장이 주로 철제로 만들어졌을 텐데, 이 제품은 은색 컬러로 그 느낌을 구현했다. 단순히 외관상 느껴지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물리 다이얼과 레버에서 나는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모두 옛날 그 소리와 비슷하다. 예전에 다이얼은 카메라 내 필름을 렌즈 뒤쪽으로 위치시키기 위한 용도였는데, 이 제품의 다이얼은 다르게 쓰인다. 구체적 사용법은 후술한다.

카메라 전면부엔 렌즈와 전원 버튼, 플래시와 셔터 버튼, 셀카를 찍기 쉽도록 놓은 거울 같은 부분이 있다. 상단(또는 측면)엔 다이얼과 레버, 또 다른 셔터 버튼, 추가 플래시를 장착하는 홈이 있고, 측면엔 즉석사진이 나오는 홈이 있다. 후면엔 디스플레이와 각종 소프트웨어 작동 버튼이 있고 이 부분을 열어 필름을 넣을 수 있다. 한마디로 즉석카메라와 디지털의 오묘한 조화다.

▲ 미니에보 상단. 디지털 카메라임에도 다이얼과 레버 등이 물리적으로 구현됐다.(사진=이일호 기자)
▲ 미니에보 상단. 디지털 카메라임에도 다이얼과 레버 등이 물리적으로 구현됐다.(사진=이일호 기자)

제품엔 특이하게 사진 찍는 버튼이 두 곳(전면부와 측면부)에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때 손이 가는 위치를 고려해 버튼을 두 곳에 만들어준 듯하다. 실제로 이 제품으로 사진을 찍을 때 여러 위치와 각도를 활용했는데 자연스럽게 이 두 버튼을 동시에 활용했다.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이해가 가는 디자인이다.

전면 하단 전원 버튼을 돌리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제품이 켜진다. 필름 카메라에선 렌즈가 열리며 나는 물리음이었는데 이 제품은 소프트웨어 소리로 대체됐다. 스프링이 풀리며 렌즈가 탁 열리는 느낌이나 모터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촉감은 덜하지만, ‘이제 사진을 찍을 준비가 됐다’는 예전의 두근거림만큼은 충분히 느껴진다.

디지털의 편의와 즉석카메라의 감성
앞서 언급했듯 이 미니에보는 즉석카메라이면서 또 디지털카메라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 현상되는 즉석카메라와는 달리 이 제품은 카메라 안에 사진이 저장되며 후면부 디스플레이를 통해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원하는 사진을 선택해 즉석으로 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편의와 즉석카메라의 느낌을 모두 취한 것이다.

▲ 사진은 이런 식으로 출력된다.(사진=이일호 기자)
▲ 사진은 이런 식으로 출력된다.(사진=이일호 기자)

제품엔 특이하면서 재미있는 기능 두 가지가 숨겨져 있다. 앞서 언급한 다이얼과 렌즈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제품은 렌즈와 다이얼을 돌릴 때 각각 10개의 효과를 선택할 수 있다. 필름의 다양한 느낌을 위해 특수 필름을 쓰거나 특이한 효과를 주기 위해 여러 기법을 활용하던 걸 이 제품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쉽게 구현했다. 그걸 쓸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다이얼과 렌즈다.

렌즈를 돌리면 보통 줌이나 포커싱이 바뀌겠지만, 이 제품에선 다양한 효과를 구현해준다. 색 분리나 블러, 빛 번짐, 하프프레임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렌즈를 바꿔 끼워야 하는 어안 효과나 필름 한 장으로 사진을 두 번 찍어야 구현할 수 있는 이중노출 효과 등도 설정할 수 있다. 또 다이얼을 돌리면 필름의 효과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즉석 사진 말고도 적·청·황·흑색, 캔버스, 비비드, 세피아 등의 효과를 선택할 수 있다.

▲ 제품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이중노출을 만들어줄 수 있다.(사진=후지필름)
▲ 제품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이중노출을 만들어줄 수 있다.(사진=후지필름)

예컨대 필름에서 빛 번짐 효과를 주려면 예전엔 카메라 후면부 덮개를 아주 잠깐 열었다 닫아야 했다.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우연한 빛 번짐 효과를 구현할 수 있긴 하나 비싼 필름을 날려 먹을 위험성 또한 있었다. 또 흑백 사진은 전용 필름을 따로 썼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돈이 더 드는 구석이다. 이 제품은 그걸 소프트웨어적으로 쉽게 구현해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미니에보는 일반적인 카메라의 기능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했다. 28밀리미터로 줌이 되지 않는 단렌즈의 단점은 디지털줌으로 대체했고 노출보정과 화이트밸런스, 셀프타이머 기능도 담았다. 또 촬영메뉴로 들어가면 초점을 맞추는데 편의를 주는 AF보조광 기능이나 밝기를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 자동으로 얼굴을 찾아주는 기능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흡사 스마트폰 카메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마트폰 속 사진도 즉석에서 사진으로
제품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해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놓은 카메라를 필름으로 뽑으려면 인터넷이나 집 근처 사진관에 맡겨야 했는데 이 경우 현상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어 묵혀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제품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전용 앱과 연결돼 내 스마트폰 속 사진을 바로 뽑을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즉석카메라 느낌으로 뽑을 수 있으니 쉽고 편하다.

▲ 미니에보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 속 사진을 출력하거나 기기 속 사진을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다.(사진=후지필름)
▲ 미니에보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 속 사진을 출력하거나 기기 속 사진을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다.(사진=후지필름)

사용성에서의 편의와 별개로 약간 아쉬운 지점도 있다. 과거 즉석카메라를 쓸 때 느껴졌던 아날로그의 느낌이 덜하다는 것이다. 렌즈를 한 장 한 장 아껴가면서 찍어야 했던 아날로그 카메라와는 다르게, 미니에보는 엄밀히 말해 디지털카메라에 즉석 필름 출력기를 합쳐놓은 제품이다. 사진을 골라가며 뽑을 수 있고, 당연히 ‘옛날 감성’을 100% 구현하진 못하는 게 사실이다.

또 렌즈와 디스플레이도 다소 아쉽다. 렌즈는 교체가 불가능하고 광학줌 기능이 없어 사용성 측면에서 제한이 있다. 또 사진기 후면의 디스플레이가 약간 흐려서 사진 찍을 때 이 흐림 때문에 줌이 제대로 맞춰졌는지 아닌지 다소 헷갈릴 때가 있다. 내부 칩도 고사양은 아닌듯 특정 효과를 설정할 때 화면이 끊어질 때도 있다. 후지필름 인스탁스의 하이엔드 제품이란 점에서 이런 부분은 추후 개선되길 바란다.

대체할 수 없는 사진의 값어치
제품을 며칠 쓰며 새삼 깨닫게 된 건 사진 찍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재미다. 원하는 앵글을 위해 특정 스팟으로 이동하고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으면 피사체와 그 주변을 둘러싸는 환경을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걸어 다니며 찍은 여러 사진은 좋은 추억도 되지만 내가 사진을 찍은 스팟 그 자체에 좀 더 애정을 갖는 계기도 된다. 디지털카메라 이전 시대에 우리가 흔히 느끼던 감성이 바로 이럴 것이다.

▲ 미니에보로 찍은 사진으로 집을 꾸며봤다.(사진=이일호 기자)
▲ 미니에보로 찍은 사진으로 집을 꾸며봤다.(사진=이일호 기자)

2000년대 폴라로이드 사가 망하면서 즉석 필름 카메라는 멸종할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편리한 디지털을 쓰면 되는데 뭐하러 필름 카메라를 쓰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금 이 시각에도 애써 불편한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아날로그의 다른 이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역사와 향수, 추억, 정겨움 등이다. 미니에보의 존재가 그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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