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일가가 2010년 미국 CES 행사장에 방문했다.(사진=삼성전자)
▲ 고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일가가 2010년 미국 CES 행사장에 방문했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사실상 실질적인 '가족 간 공동 경영 체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가장 많은 지배력이 쏠려 있긴 하지만, 홍라희 여사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삼성전자 지분과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및 삼성물산 지분을 일정 비율대로 나눠갖게 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이 이재용 부회장으로 모두 쏠리도록 상속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유족들의 상속 주식 현황이 발표되고 살펴보니 삼성생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계열사 상속지분이 법정상속비율대로 나누어졌다. 삼성생명 역시 홍라희 전 관장을 제외하고는 삼남매가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지분을 나누어 상속받았다.

3대 째를 맞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 1명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분간은 가족 공동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물산 등 4개 계열사는 30일 오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일제히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 변동신고서'를 공시했다. 이날 공시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SDS 등 4개 회사의 주식 상속에 따른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은 삼성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 상속비율대로 나눴다.

이번 주식 상속의 핵심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회장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삼성생명 주식의 상속을 포기했다. 상속 비율도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이 각각 '50:33:17' 비율로 나눴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기존 0.06%에서 10.44%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0%, 0%에서 6.92%, 3.46%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과 이부진 사장 및 이서현 이사장의 삼성생명 지분율 합이 거의 비슷하다는 데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삼성생명 지분율 합은 10.38%다. 이재용 부회장과 거의 차이가 없다. 개인 최대주주가 이재용 부회장이라 하더라도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힘을 합하면 언제든 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만한 지분율이다.

▲ 고 이건희 회장 상속 후 지분율 변화.(자료=금융감독원)
▲ 고 이건희 회장 상속 후 지분율 변화.(자료=금융감독원)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17.9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자 삼성생명의 2대주주로 삼성전자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됐다. 하지만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각각 6.1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 이 사장·이 이사장간 지분율 격차는 대략 5.6%포인트 가량 밖에 안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 지분율 합은 이재용 부회장 지분율을 넘어선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던 삼성전자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몰아주지 않고 법정 상속비율대로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유족이 이 회장 지분 상속비율에 합의한 만큼 향후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이전까지 삼성전자에 지배력이 미치지 못했는데, 이번 지분 상속으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졌다. 보통 이런 지분 구조를 두고 '형제간 공동경영 구조'라고들 한다.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물산에 대한 가족 간 공동경영의 길이 열린 만큼 이부진·이서현 남매의 역할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계에서는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현재 사업 영역에 만족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호텔신라의 자산총액은 약 2조8938억원, 연 매출은 3조원 규모다. 삼성전자의 자산 규모는 약 378조원, 연 매출은 236조원에 달한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미래에 계열분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 핵심 계열사를 중심으로 공동경영을 통해 오너십과 경영권을 지킨 후 계열준비를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삼성그룹은 △전자 및 소재 △조선업 △건설업 △호텔업 △금융업 등이 '다핵구조(뚜렷한 핵심회사 없이 다수의 계열사가 연결)'로 연결돼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이 중심에 있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두 축이 지배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등 3남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면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에 대한 정부의 견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어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번 상속재산 분배 현황을 볼 때 당분간 공동경영 형태를 띄다가 주요 섹터별로 계열분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 등 그룹의 핵심 사업을 맡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삼성의 주요 섹터를 나눠갖는 것이다. 그러려면 복잡한 삼성의 지분관계를 해소해야 하지만,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과거 삼성이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CJ △신세계 △한솔 등으로 분리된 사례도 있다.

계열분리를 준비하기 위한 첫단추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12조원의 상속세를 내고, 상속재산을 합법적으로 상속받기로 했다. 가장 큰 변수였던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 문제도 사실상 정리됐다. 이 부회장이 현재 투옥 중인 상태이지만, 재계 안팎에서 사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형기가 끝나면,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 요건이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상속되면서 복잡한 지분관계가 조금이나마 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모든 섹터를 장악하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고, 가족이 공동경영을 통해 섹터를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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