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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옥션사태의 피해자: 불쾌와 불안의 경계를 생각하며

  기쁘미 2008. 04. 18 디지털라이프, 삶/여가/책 |

유감스럽게도 회원님께서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확인한 개인정보 유출 회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출된 회원님의 개인정보는 이름, 옥션아이디, 주민등록번호, 이메일주소, 주소, 전화번호 및 일부 구매 내역이 포함되어 있으나, 은행계좌번호는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리고 기 공지드린 바와 같이 옥션 비밀번호, 신용카드 및 카드 비밀번호 정보, 실시간 계좌이체 정보는 금번 유출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재확인되었습니다. 유출된 개인정보의 유포나 도용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현재까지 보고된 바 없으나, 옥션은 경찰과 협력하여 유출 정보의 유포 방지와 조속한 범인 검거를 통해 소중한 회원정보를 즉각 회수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계속 기울일 것을 약속 드립니다.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해킹 범죄의 대상이 되어 회원님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것도 빠져나갔다. 1천만명이 넘게 걸려들었는데 나만 예외이기를 바랬던 것 자체가 로또 당첨을 기다린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도 왠지 나만은 아닐 것 같은 기대를 품은 것은 무슨 요상한 심보였는지. 하여튼 사람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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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이 친절하게(?) 알려준 내용에 따르면 옥션에서 도난당한 내 정보는 이름, 옥션아이디, e메일 주소, 주소, 전화번호, 일부 구매 내역, 주민등록번호다. 비밀번호와 은행계좌번호는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단다. ‘과연?’하는 의심이 들지만 그래도 믿어야겠지. 안믿는다고 날라간 내 정보가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직업상 e메일 주소는 아무한테나 알려주고 다니다보니 솔직히 누가 이 정보를 가져갔다고 해서 ‘큰일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팸메일이 좀더 날라오겠지만 구글 G메일(개인적인 넘버원 e메일 서비스)에서 알아서 지운편지함으로 버려줄테니 스트레스 받을일도 별로 없을 것 같고. 그래 이 기회에 옥션한테 인심한번 쓰자. “다음부터는 조심해야돼. 알았지?”

전화번호는 어쩔거냐고? 이것도 마찬가지다. 스팸문자 좀더 받으면 된다. 떠오르는 디지털 시대의 그늘 ‘휴대폰스팸’, 그래 기꺼이 끌어안아주겠다. 구매 내역은? 내친김에 인심한번 더 쓰자. 남들이봐서는 안될 이상한 제품산것도 아닌데, 이걸로 뭘 어쩔꺼야?

그럼 주소는? 지금사는 전세 이거, 언젠가는 이사갈꺼니 상관없다. 이쯤되면 나도 마음씨가 꽤 고운편이다.^^

이제 주민번호 차례다. ‘주민번호 유출이 하루이틀된 문제도 아닌데, 참는김에 이것도 그냥넘어갈까?’하는 생각을 했을거라 누군가 혹시라도 믿었다면 참 미안하게 됐다. 주민번호랑 e메일 주소를 같은급으로 볼 수는 없다.

이유? e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는 도난당하면 그저 불쾌할 뿐이지만 주민번호는 불안해진다.. 앞서 언급한 정보들과 주민번호를 버무리면 비밀번호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방심하는 사이에 내가 지능적인 보이스 피싱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되는 것은 아닌지. 더구나 옥션에서 내가 쓰는 아이디는 다른 사이트들에서도 즐겨쓰던 것인데.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어떤 사이트에 로그인하려할때마다 ‘내가 두드리는 키보드 정보를 누가 보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마구마구 밀려든다. 키보드 보안 솔루션으로 체크해보니 ‘안심하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뛰는 보안 솔루션’에 ‘나는 인터넷 범죄’ 시대임을 떠올리니 안심조차 내맘대로 할 수 없다. ‘혹시?’와 ‘설마?’로 대표되는 막연한 불안의 힘은 이렇게 위력적이다. 거룩한 얘기하기 좋아하는 아무개씨는 나의 이런 불안에 대해 “디지털 세상에 신뢰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거룩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신뢰의 위기는 인터넷 산업 구조를 뿌리채 뒤흔드는 폭발력을 지녔다”는 경고장까지 날린다.

디지털 시대에서 이같은 불안은 치유될 수 없는 것인가? 최첨단 사이버 범죄 시대를 보고 있으니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렇다면 결국 평생을 이렇게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러기는 너무너무 싫고.

보안 기술로 디지털 시대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면 이 방법은 어떤가? 주민번호를 아예 없애버리는 거다. 주민번호가 없었다면 이번 옥션사태서도 불쾌했을지언정 불안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구조에서 주민번호 없애는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보안기술로 주민번호 유출을 막겠다는 것보다는 주민번호가 소용없는 사회구조를 만드는게 디지털 시대, 불안을 덜어주는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 아닐런지. 그렇다면 가급적 쉬운길로 가자. 지금은 실용주의 시대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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