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화끈한 뒤집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2007. 12. 10 삶/여가/책 |
대세(?)로 떠오른 세계화 논리를 뒤집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요즘에는 반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비춰진다.
한국서도 마찬가지다. 싫든 좋든 신자유주의식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경제논리로 자리를 잡았다. 현실을 근거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태클을 걸고 싶어하지만 “대안이 뭔데?”라는 전가의 보도앞에 별힘을 쓰지 못한다. 욱하는 마음에 목소리 높여봤자 소용이 없다. ‘이상주의자의 분노’라는 꼬리표만 추가될 뿐이다.
이쯤해서 물음표를 던져야겠다.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관세철폐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현존하는 경제학중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인가? 또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가장 확률높은 승부수인가?

<쾌도난마, 한국경제>로 알려진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앞서 던진, 두가지 질문중 첫번째, 즉 신자유주의는 많은 나라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가?란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도발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장 교수가 내린 결론이 애매모호한 두루무술형 자기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그는 역사를 통해 확보한 풍부한 팩트(Facts)들을 근거로 신자유주의식 세계화 논리가 얼마나 왜곡돼 있으며 또 그것이 강대국을 위한 논리인지를 명쾌하게 꼬집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식 세계화가 장기적으로 강대국들에게도 도움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장 교수에 따르면 부자나라들이 퍼뜨리는 신자유주의 세계관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다름 아니다. 보호주의 경제논리를 앞세워 돈을 모은 부자 나라들이 자신들이 했던 방식을 쓰려는 개발도상국에는 입장을 바꿔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으로 부자라는 사다리에 올라간 나쁜 사마리아인들(신자유주의자)이 ‘me too’ 전략으로 사다리를 오르는 개발도상국들을 향해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냐!’라며 얼굴 두껍게도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것처럼 외치고 있지만 장 교수는 이러한 주장이 허구임을 낱낱이 파헤친다. 외국인 투자, 공기업 민영화, 지적재산권 등과 관련해서 부자나라들이 펴는 주장들은 이들이 과거에 했던 행동과는 거리가 먼 거짓말일 뿐이다. 뻥도 이런뻥이 없단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장하준 교수는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원칙적으로 그는 개방을 지지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신자유주의는 아니다. 나라마다 경제적인 차이가 있는 만큼, 개발도상국들이 경제개방에 대해 어느정도 자율성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
결국 개방도 앞뒤 따져가면서 하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들에게 획일적인 개방을 강요하는 것은 부자나라들의 야비한 사다리 걷어차기 권법이며 이것은 매우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막연하게 진실이라고 생각하던 상식을 뒤집는 역사적 사실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장 교수의 주장을 도발적이면서도 설득력을 갖도록 중무장시키는 핵심 경쟁력이다. 이 책이 대세를 틀어쥐었다고 믿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우리 사실을 갖고 까놓고 한번 얘기해보자’는 선전포고 성격을 지녔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식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제학 교양서다. 그런만큼, 한국적 상황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앞서 던진 ‘한국서도 신자유주의는 가장 확률높은 승부수인가?’란 질문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근거한다면 장하준 교수는 한국이 신자유주의식 개방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한국이 주주자본주의를 택하기 보다는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복지 강화를 대안으로 내걸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나 신자유주의식 경제관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적 상황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생각은 최근 출간된 <장하준, 한국경제의 길을 말하다>에서 보다 자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출판사 서평을 보니 장 교수 특유의 경제관을 보여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이익이 있다고 해도 거기서 잃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산업이 없어지면 거기서 자원이 다른 산업으로 그냥 이동하고 그런 것은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시장경제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죠).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농업이 망해가지고 농민들이 실업자가 되고, 그 후 자동차 수출이 늘어난다고 했을 때 그 농민들이 자동차 공장에 취직할 수 있나요? 그런 보상의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이런 거 하려면 유럽처럼 복지국가 제대로 만들어놓고 해야죠. 그러면 어느 산업이 흥하건 망하건 별 관계가 없는데, 이건 보상이 안 되거든요. 농업 개방하니까 돈 주고 어떻게 한다지만, 말하자면 그건 근본적인 보상이 아니죠.”






2007-12-14 at 6:12 오후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름은 진규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